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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의 옷.

  • Apr 22 2022
  • Yoonha Kim
    is a visual anthropologist interested in the relationship between technology and locality.


하늘과 땅, 변화하는 계절 사이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위치를 물으며 옷을 입는다. 여섯 번째 대멸종이 진행되고 있는 지구에서 인간이라는 종의 보전을 희망하는 이들은 옷을 찾아 입을 때 단순 홍보성 친환경 제품을 소비하기보다 근본적으로 인간이 만물과 맺는 관계에 대해 고찰해야 한다. 자연을 정복과 착취의 대상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관계로 바라보는 토박이 지혜는 세계 곳곳의 오래 묵은 옷들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공생과 순환의 가치를 우위로 두는 삶을 입으려면 몸을 어떤 옷으로 감싸야 할지 이 옷 저 옷을 찾아보았다. 나는 국가주의자가 아니지만, 한국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먼저 구할 수 있는 우리 옷을 조금씩 찾아 입기 시작했다. 우리 할머니 세대는 치마저고리를 입고 학교에 다니셨는데 왜 내가 입는 옷들은 오히려 여기 독일 사람들이 입는 옷이랑 더 비슷한지, 옷의 형태가 갑자기 변한 것과 생태 위기는 어떤 관련이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우리 옷을 입고 생활하며 알아보기로 했다. 조신하고 차분한 전통 옷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우주와 함께 신명 나게 고동치는 옷을 입고 싶어서 활동하기 편하게 만들어진 저고리와 치마 혹은 대님 대신 고무줄로 마무리된 바지를 구해 입었다. 그 과정에서 운이 좋게 우리 옷에 담긴 살림의 철학을 전해주신 이기연 선생님과 명주 짜기에 담긴 의미를 들려주신 허호 선생님을 만났다. 덕분에 옷을 입을 때 풍성한 이야기들도 함께 입게 되었다.

한반도라는 특정 지역에서 사람들이 수천 년간 입어온 옷은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의 우주를 이룬다고 보는 삶의 방식에서 나타났다. 이 세계에서는 자극에 반응하고 성장하는 유기체뿐 아니라 삶의 그물망을 이루는 모든 것들, 예를 들면 돌멩이나 짚, 나무젓가락 같은 것들이 우주의 생성에 참여하는 숨이 깃든 활물이다. 물론 옷도 만물이 생성하고 변화하는 흐름과 같은 호흡으로 지어진 것이다. 열악한 환경에서 대량으로 만들어내는 의류의 제작, 유통, 소비 과정에서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 이유는 비인간을 생동하는 활물이 아니라 인간의 필요에 의해 쉽게 얻고 버리는 수동적인 사물로 보기 때문이다.  옷의 재료가 되는 천부터 찬찬히 살펴보면 생동하며 뒤얽힌 무리의 연결망을 볼 수 있다. 모터가 유입되기 전, 전통 방식대로 명주 원단 한 필을 짜려면 일단 기후와 강우량이 맞아 뽕나무가 잘 자라야 하고 그 나무에서 돋아난 뽕잎을 누군가 열심히 따야 하고 그 뽕잎을 누에에게 먹이고 누에가 

건강하게 자라도록 보살펴서 하얀 누에고치를 얻어야 한다. 실을 뽑을 때 누에고치를 삶기기 때문에 희생된 누에의 넋을 기리는 선잠제도 지낸다.  그 다음은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 실을 뽑고 실을 정련하고 베틀로 북을 왔다 갔다 하며 명주를 짜야 한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온 우주가 명주에 담겨있다. 이렇게 물질을 여러 숨이 깃든 것으로 보면 함부로 하지 못하게 된다. 자투리도 버리기 아까워진다. 그래서 우리 옷을 만들 때는 네모진 원단을 남김없이 다 쓴다. 업계에서 쓰는 말로는 “제로 웨이스트 디자인”이다. 평면으로 짜인 천을 마름질하여 옷으로 만드는 방법에는 크게 입체구성과 평면구성이 있다. 입체구성은 쉽게 말해 양복 재킷 같은 형태이다. 몸의 곡선을 따라 다트를 넣고 마름질해서 몸매에 맞도록 옷을 구성하는 것이다. 평면구성은 우리 옷처럼 옷감을 직선으로 마름질하고 입체적인 사람 몸에 맞도록 여유분을 주름잡거나 접어서 끈으로 묶어 고정하는 방식이다. 정성스럽게 짠 원단에 직선으로 자른 조각들을 맞물려 배치하면 네모반듯한 천을 남김없이 쓸 수 있다. 그래도 생기는 자투리는 모아두었다가 이어서 조각보로 만든다. 패턴이 따로 있다기보다 시접을 크게 둬서 바느질로 옷 모양을 잡아간다. 그래서 살이 찌거나 빠지거나 하는 등 몸의 형태가 달라지면 접어서 여며 입기도 하고 바느질을 뜯어내고 몸에 맞춰서 다시 옷을 만들기도 한다. 몸을 고정된 의복의 크기와 형태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옷이 입은 사람의 몸에 맞춰 자유롭게 변화한다. 이런 여유가 있으니 옷을 다른 이들과 나눠 입기도 쉽다. 이러한 옷은 입는 사람마다 다른 주름과 접힌 폭이 생기는 불확정성을 포용한다. 유행 따라 사서 몇 번 입고 버리는 옷과 다른 살림의 철학이 담겨있다. 또 몸을 조이지 않은 풍성한 구조 사이로 바람이 드나들며 옷의 안과 밖이 통한다. 우주가 숨 쉬는 현상을 바람이라 이른다면 온 우주의 호흡이 담긴 풍류의 옷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바늘을 사용해서 옷을 지어 입고 강한 추위를 견뎌냈을 때부터 지금까지 지구에 사는 대다수의 사람은 어떤 형태로든 옷을 입어왔다. 지구 밖의 누군가가 이 행성을 지켜본다면 저런 희한한 동물들이 있다고 재미있어할지도 모른다. 산업화 이전에는 지역마다 서로 다른 기후와 풍토, 생활 조건, 흔히 구할 수 있는 재료, 거대서사에 바탕을 둔 기술, 아름다움의 기준에 따라 고유한 방식으로 몸을 덮었다. 한 사회의 특색이 담긴 이 옷들은 다수의 일상생활에서 사라졌다. 대신 특별행사나 박물관에서 박제된 모습으로 마주하게 된다. 전 세계에 다양했던 의문화가 서양 옷의 흐름에 흡수된 것처럼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사유하는 지역 고유의 방식들도 주변부로 밀려났다. 요즘 사람들이 입는 옷의 종류와 옷 짓는 기술, 새로운 유행의 흐름이 생겨나는 장은 강대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세계화되고 있다. 문제는 산업화 이후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입게 된 옷들의 짜임새가 지속가능성과 반대 선상에 있다는 것이다. 빠르게 변하는 패션계의 흐름에 맞춰 계절마다 쏟아지는 의류는 싼값에 팔아야 하므로 공임을 적게 들이고, 이는 공장에서 옷을 만드는 사람들의 척박한 노동환경으로 이어진다. 저렴한 화학섬유를 사용하여 미세플라스틱의 해양오염 문제를 낳고, 유행에 치중한 디자인을 하므로 철이 지나면 옷장에서 나오지 않거나 금세 버려진다. 의류가 생산, 유통, 폐기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환경오염을 막는 대안으로 여겨졌던 디지털 패션은 막대한 양의 탄소를 배출하는 블록체인 기반의 대체 불가능한 토큰(NFT)과 결합하며 정말 친환경적인지 의문을 자아낸다. 물리 공간에 존재하지 않는 디지털 옷을 만들고, 팔고, 사서 입는 이들은 가상의 옷을 실제로 입은 것처럼 자신의 몸과 얼굴 사진에 합성해서 누리 소통망에 공유하거나 게임 속에서 입는다. 가상세계의 옷은 중력의 법칙도 따를 필요가 없고 인간의 몸이라는 틀을 벗어날 수도 있는데도 옷의 형태나 과시적 소비를 부추기는 플랫폼의 운영 방식은 물질세계의 모습을 닮아있다. 착취하는 현재 의류 산업 구조에서 성장의 수치를 낮추고 다름의 연결이 공존하며 외형과 정신 모두가 풍요로운 새로운 보편성은 가능한가? 사람과 사람, 세상과 몸 사이의 접속체 같은 의복이 서로 살리는 관계들로 이루어질 때 더불어 사는 옷과 삶을 입을 수 있다. 이때 살림의 기술과 우주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전통 복식들이 주는 지혜가 도움이 될 수 있다. 한국 전통 사회 의식주의 근본을 이루는 '공생과 순환'의 가치가 현대의 기술에 영향을 끼친다면 옷을 입고 사는 사람들의 세계가 어떤 방식으로 변화할지 궁금해졌다. 가상 현실 속에서 인간을 끊임없이 변화하는 유기적 전체에 속하는 일부로 보았을 때 옷은 물리적인 옷과 몸의 구조를 벗어나 다른 모습을 하게 될까? 기계를 통해 공생의 감각을 새롭게 확장할 수 있을까? 박제된 전통을 깨워 오늘의 일상, 주위의 기술과 엮을 때 옷을 만들고 입는 방식의 대전환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모두 한복으로 갈아입자는 소리가 아니다. 산업화 이전 시대에 다양한 복식만큼 다양한 이야기로, 노래로, 놀이로, 삶을 살아가는 방식으로 지구 생명체들이 공존하는 방법이 있었음을 기억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모습에 맞게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면 된다. 옷을 입는 것은 한 세계를 입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세계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옷을 입은 사람의 몸과 움직이며 끊임없이 생성된다. 어떤 세계를 입고 만들어갈지는 각자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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